조선후기 중인들이 이끌어간 문학을 '위항문학'이라고 한다. 중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인왕산 일대에서 시 모임이 이루어졌다.
수성동, 옥류동, 청풍계, 백운동, 자하동 등 인왕산 자락부터 북악산에 이르는 지역을 '웃대'라고 한다.
(서촌이라는 말보다 웃대^^)
위항시인 '천수경'은 글방 훈장으로 옥류천 가에 집을 짓고 '송석원' (소나무와 바위의 집) 이라고 불렀다.
도화서 화원 '이인문'은 김홍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산수화의 대가로 꼽혔지만,
관념 산수화를 많이 그렸기에 후대 연구자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한다.
1898년 배화학당으로 시작한 배화여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 여러번의 계단을 오르면 필운대에 도착할 수 있다.
- 이항복(오성과 한음에서 오성대감)이 쓴 '필운대' 각자바위와 이항복 9대손 이유언이 쓴 시가 있다.
- 시인 천수경은 '옥계시사'를 결성하여 약속을 정하고 함께 어울릴 것을 다짐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높은 곳에 올라가 꽃구경하기
(요즘엔 여의도에서 꽃구경하는데, 조선시대에는 필운대에서 꽃구경)
- 필운대를 소재로 한시를 소개해주신 교수님, 유득공의 필운대와 정조의 필운화류.
(정조대왕의 시 번역: 다들 필운대 와서 시를 짓고 술 한잔 하는데, 홀로 글 읽는 이 뉘집 자식인고, 내일 동궁에서 조서를 내려 상줘야겠다)
송석원터 표석
벽수산장은 송석원 일대에 지어진 윤덕영의 집이다.
현재 옥인동에서 벽수산장 정문기둥, 벽돌담과 아치를 볼 수 있다.
사진은 세종아파트 주차장에서 본 교량의 난간석
윤덕영의 소실 이성녀가 살던 집, 소실댁 안은 들어가 볼수 없지만, 소실댁으로 연결되는 층계석과 담벼락, 나무가 인상깊다.
청휘각터 : 청휘각은 조선 중후기 권력의 중심에 있던 장동 김씨의 김수향이 지은 정자이다
- 1960년대 주택들이 들어서며 사라진 '옥류동'각자. 2019년 오래된 건물을 부수면서 발견되었는데 계속 볼 수 있을지는 미정,
- '송석원기' 시를 낭독하는 교수님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전해지는 옥류동(玉流洞) 바위
인왕산이 내려운 물이 흐르던 계곡. 수성계곡.
안평대군의 수성궁을 비롯한 궁전들이 들어설 만큼 천하의 명성이였으며, 겸재 정선도 그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겼다.
2012년 옥인시범아파트가 철거되고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린교가 놓여진 수성계곡과 인왕산
★ 예술기행 스텝으로 활동중이신 <당당당의 서울도시문화기행> 을 함께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