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아 연구위원의 해설 장면(동묘앞역 6번 출구)
강원도 양구에서 가져온 소나무로 만든 '박수근 광장'의 의자
박수근 의자 아래 보도블럭에는 박수근 창신동 집터가 이쪽(오른쪽)으로 백칠십걸음이라고 새겨져 있다.
현재는 순대국집으로 바뀐 '박수근 화백의 집터' (창신동 393-1번지)
박완서가 회상하는 박수근은 천재 예술가이기 보다는 사는 일에 충실한 생활인이었다 (예술기행 2회 자료집 p.6)
박수근 집터에 설치된 유비호, 이수진 작가의 작품 <기억>.
창신동 집 마루에서 찍은 박수근 화백의 가족사진을 통해 소박하고 친근한 삶과 예술을 기억하게 한다.
박수근 화백이 거주하면서 다녔던 '동신교회'
박수근은 삶과 신앙을 밀착시켜 묵묵히 살아가는 생활화된 신앙인이었다 (예술기행 2회 자료집 p.19)
박수근 화백의 마음이 되어 예배당 안을 돌아보며 여름 끝자락의 무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작가 박완서의 신혼집(총신동62-1). 나름 신여성이였던 박완서님은 결혼하여 시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에서 살았다.
그녀의 작은 해방구는 인근 동대문시장 장보러 가는 순간이였을 것이다 (예술기행 해설중에서)
이화동 달팽이길 근처에 연립주택들이 있다. 좁고 가파른 길은 한줄서기로 통과해야 하는 길도 있어 서울의 과거 모습이 남아있었다.
박완서님도 아이 넷을 키우면서 좀더 넓고 마당이 있는 집을 찾아 이 근처(고바위)로 왔는데, 전망이 좋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뽕나무가 멋드러진 쉽터에서 박완서 작가와 박수근 화백의 삶과 예술에 대해 마무리 하였다
예술기행 '박수근과 박완서' 편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